제주도 무비자 입국 얘기를 하다가
이상한 걸 하나 느꼈다.

AI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전혀 맞는 말 같지가 않았다.


처음엔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이 정책, 과연 맞는 걸까?”

그래서 데이터를 찾아봤다.
해외 기사도 보고, 국내 기사도 보고,
AI에게도 질문을 던져봤다.


답변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문제는 있지만 경제적 이익이 있다.
완벽한 통제는 어렵지만 감수 가능한 수준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논리적이고,
균형 잡힌 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답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계속 이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예전 같지 않다.”


이건 통계로 설명하기 어렵다.

관광객 수로도,
범죄율로도,
수치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가보면 안다.


공기의 느낌이 다르고,
거리의 분위기가 다르고,
예전에 느꼈던 제주 특유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나는 그걸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고,
AI는 데이터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너무 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었다.


AI는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느끼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주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AI는
증명된 것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이미 변해가고 있는 것,
사라지고 있는 것,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적인 변화까지 느낀다.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간이 행복해지는 기준은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과 경험이라는 것.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선택이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니다.

효율적으로 맞는 결정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 여기에 있다.


AI는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다.
데이터는 더 정확해질 것이다.
판단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맡길 것인가.

정책을?
경제를?
삶의 방향까지?


만약 모든 결정을
데이터와 효율에 맡기게 된다면

우리는 더 잘 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더 행복해질까.


제주도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결국 전혀 다른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


당신은
데이터를 믿는가,
아니면 감정을 믿는가.

 

#제주도 #무비자입국 #중국관광객 #AI #인공지능  

#데이터vs감정 #삶의질 #행복이란 #사회문제 #정책논쟁  

#생각정리 #요즘생각

이미지 출처: 로튼토마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흔히 말한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하지만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과
카뮈의 시지프스,
그리고 내 인생 로그를 나란히 놓고 보면
문장이 반대로 보인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여기서 강함은
이런 의미가 아니다.

  • 마음이 전혀 부서지지 않는다
  • 상처도, 트라우마도 없다
  • 매일 열정과 긍정으로 가득 차 있다

오히려 정반대다.

  • 마음은 이미 산산이 부서졌다.
  • 실패, 병, 상실, 이별, 후회가
    생생하게 쌓여 있다.
  • 그래도,
    “이 상태로도 나는 한 번 더 살아보겠다”고
    결정하는 힘
    이 남아 있다.

Creature의 강함은
이상한 괴력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존재다.

“나는 수없이 죽고 싶었지만,
결국 살아갈 동반자를 찾아왔다.”

시지프스의 강함도
바위를 밀어 올릴 수 있는 근력 때문이 아니다.

“이게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다시 바위를 잡으러 내려가는 발걸음.”

마찬가지로,
내 강함도 특별한 게 아니다.

  • 시한부를 들었지만,
    항암을 버텼다.
  • 본업을 잃었지만,
    새로운 직업으로 다시 시작했다.
  • 관계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사람 속에서 일하며 산다.
  • 인생이 형벌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내일 출근 준비를 한다.

그 모든 순간이 이렇게 번역된다.

“나는 여전히,
부서진 채로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로튼 토마토

내 인생을 돌아보면
솔직히 말해 평지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다.

  • 캐나다 이민 실패
  • 시한부 선고
  • 항암치료
  • 오랫동안 해오던 정비사라는 본업 포기
  • 이혼
  • 그리고 40대에,
  • 새로운 직업에서 초년생 연봉으로 다시 시작

이 정도면
어지간한 사람들 눈에는 이렇게 보일 거다.

“와… 진짜 불쌍하다…”

실제로도
EX-WIFE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본다.
문제는, 정작 내 안에서는
다른 감각이 계속 떠오른다는 거다.

“힘들다. 정말 힘든데…
이상하게도, 이게 아직
진짜 ‘바닥’은 아닌 것 같다.”

그 말은 곧
**“아직 끝내지는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전히 무너진 사람은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 “이게 바닥이다.”
  • “여기서 더 내려갈 곳도 없다.”
  • “아무것도 의미 없다.”

이게 진짜 바닥(Rock Bottom)이다.
그런데 나는
계속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힘든 구간이지만,
아직 끝은 아니다.”

이 감각 자체가
내가 좋아하든 말든
**“계속 살겠다는 방향에 서 있다”**는 증거다.

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본 레거시(The Bourne Legacy)》**를 다시 보게 됐다.
이 영화는 흔한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꽤 집요하게 **‘인간의 에너지 시스템’**을 파고든다.

영화 속에서 슈퍼 솔저를 만들기 위한 초기 실험 결과로 이런 설명이 나온다.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흡수율을 1.5% 향상시켰다.”

숫자만 보면 너무 작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 1.5%의 변화로 체력 회복, 근육 성장, 지구력, 집중력까지 완전히 다른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이게 정말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 미토콘드리아는 정확히 무슨 역할을 할까

미토콘드리아는 흔히 “세포 속 발전소”라고 불린다.
이 표현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실제 역할은 아주 단순하다.

  • 우리가 먹은 음식(탄수화물·지방·단백질)
  • 우리가 숨 쉬면서 들이마신 산소

이 둘을 이용해 ATP라는 에너지 분자를 만들어낸다.

ATP는 말 그대로 몸이 쓰는 현금이다.

  • 근육을 움직일 때
  • 뇌가 생각할 때
  • 심장이 뛸 때
  • 상처가 회복될 때

전부 ATP가 필요하다.

즉,

미토콘드리아 기능 =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질과 양

이라고 보면 된다.


🧠 “1.5% 향상”이라는 말이 그럴듯한 이유

현실에서 미토콘드리아 기능은 항상 일정하지 않다.

  • 수면 부족 → 기능 저하
  • 만성 스트레스 → 효율 감소
  • 운동 부족 → 미토콘드리아 수 자체가 줄어듦

반대로,

  • 수면이 안정되고
  • 스트레스가 관리되고
  • 적절한 운동 자극이 있으면

기능은 실제로 좋아진다.

영화처럼 딱 “1.5%”라고 측정하긴 어렵지만,
작은 차이가 누적되면 체감은 분명히 달라진다.


🏃‍♂️ 3️⃣ 유산소 + 근력 운동이 모두 필요한 이유 (구체적으로)

✔ 유산소 운동이 하는 일

걷기, 자전거, 조깅 같은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면 몸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

  • 근육 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 개수가 늘어난다
  •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능력이 좋아진다
  • 같은 활동을 해도 덜 지친다

즉,

유산소 운동 = 에너지를 만드는 공장 수를 늘리는 작업

이다.


✔ 근력 운동이 하는 일

근력 운동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게 아니다.

  • 근육이 커질수록 에너지 소비 능력이 커진다
  • 포도당·지방을 저장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 일상 활동에서도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즉,

근력 운동 = 만들어진 에너지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만드는 작업

이다.


❗ 왜 둘 중 하나만 하면 부족할까

  • 유산소만 하면 → 에너지 생산 능력은 늘지만, 사용할 곳이 제한됨
  • 근력만 하면 → 사용할 능력은 늘지만, 에너지 생산이 따라오지 못함

그래서 두 가지를 함께 해야 한다.

에너지를 “잘 만들고 + 잘 쓰는 몸”이 된다


🍚 4️⃣ 식생활 – 왜 ‘연료의 질’이 중요한가

✔ 단순당 위주 식단의 문제

  • 설탕, 흰 밀가루, 단 음료 위주 식단
    → 혈당이 급격히 오르고 급격히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 에너지 급등 후 급격한 피로
  • 집중력 붕괴
  • 잦은 공복감
  • 미토콘드리아에 불필요한 스트레스

이걸 흔히 **“에너지 롤러코스터”**라고 부른다.


✔ 복합 탄수화물 + 단백질 + 좋은 지방의 역할

  • 복합 탄수화물(현미, 고구마, 감자, 채소)
    → 천천히 에너지를 공급
  • 단백질
    → 미토콘드리아 효소와 근육 회복에 필요
  • 좋은 지방(올리브유, 견과류, 오메가-3)
    → 지방 대사 효율 개선

이 조합의 결과:

  • 혈당이 안정됨
  • ATP 생산이 일정하게 유지됨
  • 피로가 늦게 찾아옴

즉,

미토콘드리아는 “많이 먹는 것”보다 “어떤 걸 먹느냐”에 더 민감하다


📈 이런 변화가 쌓이면 생기는 실제 차이

이 모든 걸 종합하면, 변화는 이렇게 나타난다.

  • 하루 끝에 남아 있는 에너지가 다르다
  • 운동 후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
  •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 나이가 들어도 활동량을 유지할 수 있다
  • 병이 아니라 “기능 저하”로 무너지는 속도가 늦어진다

이게 바로 **활력 있는 삶(healthspan)**의 핵심이다.


🎯 결론 – 영화는 허구지만 방향은 현실이다

《본 레거시》는 분명 영화다.
유전자 조작, 슈퍼 솔저는 현실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던진 질문은 아주 현실적이다.

“에너지 효율이 아주 조금만 좋아진다면, 삶은 얼마나 달라질까?”

그 답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

  • 수면
  • 스트레스 관리
  • 유산소 + 근력 운동
  • 안정적인 식생활

이 네 가지만 제대로 유지해도
미토콘드리아 기능은 실제로 좋아지고, 삶의 질은 분명히 달라진다.

출처: 로튼토마토 공식사이트

여기서 한 번 더 현실로 내려와 보자.

현대인에게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을 망설인다.

  •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이렇게 물으면 대답이 달라진다.

  • “지금 삶에 만족하세요?”
  • “음… 그냥저냥 만족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거다.

행복은 잘 모르겠는데,
만족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이걸 시지프스에 빗대면,
이런 비유가 가능하다.

  • 산을 오르며 바위를 미는 사람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아주 짧은 정상의 순간을 경험한다.
    • 숨 막힐 정도의 고통 +
    • 잠깐의 희열
  • 반대로,
    애초에 산을 오르지 않고
    평지만 걷는 사람도 있다.
    • 크게 고통스럽진 않다.
    • 그렇다고 황홀한 정상의 순간도 없다.
    • 대신 “그럭저럭 만족”이라는 감각은 있다.

그러니까
행복과 만족은 꼭 같은 개념이 아닐지 몰라도,
현실 속 대부분의 사람은
“큰 고통도, 큰 황홀도 없는 평지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셈이다.

문제는 이거다.

내가 지금 평지를 걷고 있는 건지,
이미 몇 번이나 산을 올랐다가
굴러떨어진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

 

Chapter #5 에 계속......

출처: 로튼토마토 공식사이트

여기서 생각이 카뮈에게로 튀었다.

알베르 카뮈는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뭐냐고 묻고
이렇게 말한다.

“철학의 유일하게 진지한 문제는 자살이다.”

즉,
**“인생이 이렇게 부조리한데,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냐?”**는 질문.

그 답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를 불러온다.

  • 시지프스는 평생
    거대한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 정상에 거의 다다르면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지고
  • 그는 또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그 바위를 밀어야 한다.

신들이 선택한 것은
“죽게 해주는 벌”이 아니라
**“살게 하는 벌”**이다.

죽음은 종료지만,
형벌은 살면서 반복이다.

카뮈는 말한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정상까지 밀어 올리고
바위가 찰나의 순간 멈춰 서는 그 시점,
그리고 그 후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는 그 걸음이 중요하다고.

그 짧은 순간에 시지프스는
자기 처지를 완전히 인식한다.

“그래, 이게 내 형벌이다.
이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다시 바위를 밀러 갈 것이다.”

카뮈는 말도 안 되게 이렇게 결론 내린다.

“우리는 시지프스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그 행복은 달콤한 감정이 아니라,
부조리를 완전히 인식하면서도
“그래도 하겠다”고 고집 부리는 상태
에 가까운 것.


프랑켄슈타인의 Creature도 비슷하다.

  • 그는 전쟁과 폭력, 무력하게 죽어간 시체들의 조각으로 이뤄진 존재다.
  • 육체는 강하지만,
    본질은 무력함의 집합체다.
  •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고,
    결국 살해와 복수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빅터를 찾아가
마지막으로 요청하는 것은 이거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

수없이 죽을 생각을 했겠지만,
결국 그가 요구한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삶.

여기에 카뮈와 델 토로가 겹친다.

  • 카뮈:
    “바위가 다시 떨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산을 오른다.”
  • Creature:
    “빌어먹을 이 세계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결론은
불편하지만 단순하다.

계속 살겠다고 선택하는 자가,
강한 자다.

 

Chapter #4에 계속...

출처: 로튼토마토 공식 홈페이지

델 토로의 엔딩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철학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빅터와 Creature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 “너를 그런 방식으로 만든 건 내 책임이었다.”
  • “나도 너를 미워하고 파괴했지만…
    사실 나는 살고 싶었다.”

이건 단순한 감동 코드가 아니다.
이 장면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죽는 게 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여기서
‘용서한다’고 결정해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여기서 용서는

  • 과거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고
  •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건 이런 선언에 가깝다.

“이 사건이
앞으로의 나를 완전히 결정하게 두지는 않겠다.

악행은 그대로 악행으로 남는다.
잘못은 여전히 잘못이다.

달라지는 건 **“그 사건이 지금의 나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델 토로의 엔딩에서 핵심은 이거다.

  • 과거를 파헤치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는 단계에서
  • “그래서 이제 어떻게 살 건데?”로
    초점을 옮기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용서다.

 

Chapter 3에 계속....

출처: 로튼토마토 공식홈페이지

어쩌다 한 편의 영화가 인생 전체를 다시 검토하게 만들 때가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는 내게 딱 그런 작품이었다.

원래 프랑켄슈타인은 오래된 괴수물쯤으로 소비해도 되는 이야기다.
“창조주가 미쳐서 시체 꿰매서 살려봄 → 괴물 난동 → 파멸”
대충 이렇게 알고 있어도 인생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내가 **“그래도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과
알베르 카뮈가 말한 시지프스의 형벌까지
한 줄로 이어지더라.


1. 메리 셸리의 질문, 델 토로의 5분짜리 해답

프랑켄슈타인의 시작점은 익숙하다.

  • 창조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 시체 조각들로 만들어진 Creature
  • 그리고 둘 사이의 파국적인 관계

중요한 건, 메리 셸리가 이걸 썼을 때
1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시대는 19세기 초,
여성이 지적 주체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때.

그럼에도 메리 셸리는
이미 이런 질문들을 집어던졌다.

  • 인간은 어디까지 ‘창조’를 해도 되는가
  • 누군가를 세상에 던져놓고 책임지지 않는다면,
    괴물은 과연 누구인가
  • 버려진 존재는, 본질적으로 악한가
    아니면 사랑받지 못한 상처 그 자체인가

하지만 원작 결말에서
그녀는 어떤 “해결”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Creature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후회하면서도
결국 자기 소멸을 선택한다.
죄책감, 고통, 비극은 끝까지 밀어붙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메리 셸리는 이렇게 묻고 멈춘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존재는
과연 계속 살아도 되는가?”

이 질문은 열린 채로 남는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질문을 같은 이야기 구조 안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비틀어놓는다.

영화의 대부분은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 창조자의 오만
  • Creature의 고독과 분노
  • 둘 사이의 추격과 파괴

그런데 마지막 몇 분이 다르다.

델 토로의 선택은 이렇다.

괴물과 창조자가 서로를 향해
사과하고, 용서한다.

그리고 Creature는
단순히 죽음이나 파멸로 끝나는 대신,
부서진 채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엔딩에 딱 들어맞는 문장이 하나 있다.

“And thus the heart will break,
yet brokenly live on.”
(심장은 그렇게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부서진 채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메리 셸리가 남겨둔 질문에
델 토로는 한 줄로 답한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완전히 회복되기 때문이 아니라,
부서진 채로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2편으로 계속..........

헛개차에 보리차 티백을 넣어봤더니

마트 갔다가 괜히 헛개차 한 병 집어 들었다.
술 마시는 사람들 숙취에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술을 거의 안 마신다.
그런데 괜히 궁금했다. "이거, 술 안 마시는 나한테도 뭔가 도움 되나?"

고강도 운동하고 수분섭취 하면서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까나?


헛개차 vs 보리차, 가성비는?

라벨을 보니까 헛개나무 열매 추출 농축액이 13% 정도.
간에 좋다고 알려진 사포닌이나 플라보노이드가 들어있긴 하지만, 솔직히 음료 한 병에 기대할 수 있는 건 미미하다.
가격은 1.5L에 2,500~3,000원.

보리차는 다르다. 티백 4천 원이면 20리터 정도를 끓여 마실 수 있다.
단순 계산해보면 1L당 200원 꼴.
헛개차랑 비교하면 무려 8배 차이. 그냥 가성비는 보리차 압승이다.


성분 차이

헛개차는 간 해독, 항산화 이런 쪽에 포인트가 있고
보리차는 위·장 안정, 미네랄, 수분 보충 쪽에 강하다.
술 안 마시는 내 입장에선 보리차가 훨씬 더 실속 있다.


섞어서 마셔보기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그럼 헛개차에 보리차 티백을 하나 넣어보면 어떨까?"

헛개차 1.5L 병에 보리차 티백 하나를 퐁당.
실온에 1시간 두고 마셔봤는데…
이거 의외로 괜찮았다. 헛개차 특유의 달큰한 맛이 보리차 구수함에 눌려서
단맛이 훨씬 부드럽게 바뀌고, 뒷맛도 깔끔하다.
마치 카페 신메뉴 블렌드티 마시는 기분.


결론

  • 술 안 마시는 날 → 그냥 보리차가 최고. 저렴하고 부담 없다.
  • 술 마신 날 → 헛개차+보리차 티백 조합이 훨씬 나을듯 싶다. 과거 주당이었던 경험을 본다면 ㅋ
  • 지금은 고강도 운동후 회복을 고려한 수분섭취시에 먹어야 겠다.

작은 호기심으로 해본 건데 의외로 새로운 조합을 찾았다.
광고 문구보다 내 생활에 맞게 응용해보는 게 더 재밌고, 더 실속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실험은 계속 해볼 생각이다.

자전거 훈련 정보를 보면 늘 이렇게 나온다.
“존2로 베이스를 깔고, 인터벌로 파워를 올려라.”
이론으론 딱인데, 현실 속 젊은 가장에겐 늘 벽이 있다.

 

현실: 시간은 없고 눈치는 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이미 밤 9시.
아이 씻기고 집안일 돕고 나면 시계는 10시.
그때 조심스레 한마디.

“나 잠깐 한 시간만 타고 올게.”

아내의 눈빛은 말한다.
“잠깐? 당신이 잠깐이 어딨어…?”

결국 자전거는 한 시간 남짓.
시간은 부족하고, 눈치는 무한대다.

 

그래서 선택되는 건 인터벌

장거리 라이딩? 존2? 그건 꿈이다.
짧은 시간에 강하게 몰아붙이고 바로 복귀해야 한다.
그래서 남는 건 결국 하나.

  인터벌 훈련.

  • 5분 죽어라 밟고
  • 2분 헉헉대며 쉬고
  • 또 5분 죽을 힘을 짜내고

집에 들어오면 아내가 말한다.
“벌써 왔네?” (속으로는 “다행이다, 오늘은 빨리 들어왔군…” )

 

효율의 그림자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터벌만 반복하다 보면 몸은 점점 앞 반짝-후 봉크 체질이 되어버린다.
처음엔 가볍게 날아가는데,
중간 이후엔 연료가 뚝 끊기고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인터벌의 숨겨진 비용: 긴 회복

게다가 인터벌은 짧게 타도 회복은 길게 필요하다.
한 세션은 고작 1시간인데,
그 여파는 이틀, 길면 사흘 동안 몸을 무겁게 만든다.

즉, 젊은 가장의 스케줄에선
“짧게 탔다 → 빨리 회복했다”가 아니라
“짧게 탔다 → 오래 피곤하다”가 되는 셈.

결국 효율을 챙기려다,
회복과 가정 사이에서 또 한 번 눈치를 보게 된다.

 

웃픈 결론

이상적인 훈련: 존2로 지구력 깔고, 인터벌로 파워 올리기.
현실 훈련: 존2는 못 깔고, 인터벌만 치고, 회복은 오래 걸린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어쩌면 진짜 지구력은 파워미터 숫자가 아니라,
가정·일·훈련 사이에서 끝없이 타협해내는 생활 인터벌일지도 모른다.

 

하이록스 = 생활형 LSD

그렇다고 답이 없는 건 아니다.
자전거로 몇 시간을 못 채운다면,
대체 훈련이 있다.

  • 가벼운 무게로 하는 근지구력 위주 웨이트(홈트로도 가능)
  • 1시간 러닝(러닝화 사야하고 까딱하면 관절 무리감 ㅠ)
  • 하이록스(HYROX) 같은 1시간 프로그램(대신 가격이 비쌈;;)

사실 이런 것들이 사실상 존2 대체 훈련이 되어준다.
짧아 보이지만 심박은 Zone2~3을 꾸준히 유지하고,
전신 지구력과 산화 대사를 동시에 자극한다.

 

작은 해결책

그러니 현실 속 젊은 가장에게 답은 이거다.

  • 평일엔 자신에게 맞는 종목의 짧은 인터벌로 시간 효율 챙기고
  • 주중 하루는 LSD 대체 훈련으로 존2 구멍을 메운다

이렇게만 해줘도,
인터벌 칠 때 버티는 힘이 달라지고,
어쩌다 장거리 라이딩을 나가도 봉크 위험이 확 줄어든다.

👉 결론: “짧게 인터벌, 길게 회복, 주중 한 번은 존2 대체”
이게 바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찾은 합리적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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